'거짓말' 이야기 1

Faith, Hope, Love 2015.08.11 11:57

  아인이가 백설공주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사냥꾼이 왕비의 명령을 받아서 백설공주를 숲으로 데려가 죽이려고 하다가, 풀어주고 왕비에게 가서 백설공주를 죽였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지요. 거기에서 아인이가 말합니다.


"거짓말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성경이야기의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분명히 '거짓말 하지 말라'라고 나오고 있거든요. 그리고, 아인이에게도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쳐왔으니, 사냥꾼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보자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설명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사냥꾼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백설공주를 살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말하고 보니 백색 거짓말을 옹호하는 듯한 내용이 되어버렸네요...)


  아인이에게 점점 복잡한 상황과 컨텍스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하고 생각하도록 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옴을 느낍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과 행동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아인이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한번 혼나서 울면서도 자기는 절대 거짓말 안 했다고 고집부리기도 했지요.)


  또한, 나는 이런 상황에 (백색 거짓말과 같은)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내가 이해한 것을 아이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의 말로써 명쾌하게 설명이 되면 간단하겠지만, 세상의 일이나 사람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기에, 부모로서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은 아인이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해도, 위의 상황과 같이 자기가 들었던 것과 서로 conflict가 일어나는 상황을 인식하고 질문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살면서 지나치거나 덮어두었던 질문들을 아이에게서 받아서 또 다시 고민하고 생각해야 되는 때가 오는 것일까요? 그 때에 나의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서 화석이 되어있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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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1~22

Faith, Hope, Love 2015.07.14 14:28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변론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서 베드로와 요한을 회유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요청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의견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의 갈등은 ‘세상의 흐름이냐 하나님의 말씀이냐’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지 나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삶의 편함과 이익에 관련될 때 저는 고민을 하게 되겠지요.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이도 갖게 되면서 이런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고난이나 힘든 것은 감당을 할 수 있겠지만, 가족들이 힘들어 하거나 손해를 보게 될 때에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더욱 힘들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삶이 무거워질 수록 안정에의 욕구가 커져가는 것을 보게 되고,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성령 충만 (8절)’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종교 지도자들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은 것은 그가 성령에 충만하였기 때문임을 봅니다. 성령은 우리가 진리를 알게 하고 그것을 담대함으로 붙잡게 합니다. 제가 말씀안에 바로 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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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

Faith, Hope, Love 2015.07.11 03:07
  나는 나에게 도움이 요청될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resource를 고려해서 내가 할 수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응답을 합니다. 나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라 내가 해야할 일과 내가 그것을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할 수 있을지 재고 판단합니다. 그리하여서,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자원이 다른 사람의 도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서야 움직이곤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에 나온 사건을 보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에 반응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게 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솔직히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그런 능력이 부럽습니다.
  스스로도 헉헉대면서 겨우 유지하는 것 같은 내 삶을 볼 때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또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와 시간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할 수 밖에요. 그리고, 기도 - 하나님과의 대화 - 가운데에서 그들을 드러내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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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

Faith, Hope, Love 2014.10.19 14:21

  송병주 목사님의 고린도전서 4장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십자가의 복음은 초대 교회의 때나 지금의 때나 인기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임을 깨닫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서 복음의 진리를 계속해서 설명하고 다른 종류의 복음에 대해서 경계하고 멀리하도록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왜곡된 복음들인 영지주의, 유대주의, 은사만능주의를 가르치는 교사들에 미혹되어 있었고, 교회 또한 자신들이 추종하는 사람들과 이론들을 기반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바울은 잘못된 복음들을 따르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권고를 하면서도 자신의 아프고 상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와 현재의 교회를 돌아보아도 교회가 십자가에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들을 따라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권력에 빌붙거나 부패한 교회가 큰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마치 돈(맘몬)과 힘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인 양 가르치기도 합니다. 잘못된 종말론과 세대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키거나 세상을 보는 관점을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보다는 값싼 은혜로 복음을 가득 채워나가기도 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런 여러가지의 왜곡된 복음 가운데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복음은 너무나 초라해 보이고, 약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비워버린 채 설탕을 가득 입힌 복음은 너무나 힘이 있어 보이고, 세련되어 보이고, 더군다나 그 무엇보다 은혜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질되고 잘못된 복음은 교회가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스며들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낮고 어렵고 너덜너덜해진 그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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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룩한 부름 - 김영봉 목사님 설교

Faith, Hope, Love 2014.10.06 17:15

  <사귐의 기도>의 저자 김영봉 목사님의 로마서 11장 설교... 우리의 거룩한 부름. 무거운 주제의 이런 설교를 해 주심에 감사하고, 예수님과 바울이 계속해서 말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밝혀 주심에 감사합니다.


  편가르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빛으로 복음으로 불러주시는 하나님... 작은 것에 경도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눈이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공의를 바로 알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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