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나이가 들 수록 자신의 마음에 완고하게 갇히는 모습을 많이 보이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여유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지키려는 두려움으로 인해 안으로 움츠려 드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경험한 삶이 오로지 맞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각박한 삶과 어그러진 세상이 사람들을 삶을 그렇게 화석처럼 만들었기에 무조건적인 비난만을 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옹호할 수도 없는 삶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또한, 삶을 살아갈 수록 저의 마음도 굳어가는 것 같기에 두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어령이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삶의 평생에 걸쳐서 지성을 추구해온 사람의 회심기입니다. 한 사람의 회심이 이렇게 책으로 나올 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의 회심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지성을 추구해온 존경받는 학자의 70이 넘은 늦은 나이의 회심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승리의 기쁨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믿기 어려운 어이없는 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책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일생에 거쳐서 지성의 바다를 연구해온 사람의 겸손함입니다. 스스로 문학을 해온 것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는데, 일생을 거쳐서 그렇게 쌓아 올려도 결국에는 인간 본원의 고독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일본에서의 고독한 시간을 거치며 마음이 가난하여지고, 딸이 겪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일생을 거쳐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 - 돈, 지위, 학력, 문학 - 들이 풀어줄 수 없는 인생의 문제와 자신의 모습을 대면할 때 믿음의 걸음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에서 서성인다는 고백, 하나님께 온전히 뛰어들지 못하고 번지점프 줄에 매달려 있다는 고백... 그렇지만, 늦게 일하러 온 일꾼에게도 동일하게 대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겸손한 믿음은 나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렸습니다. 지성의 바다를 탐구해온 깊은 통찰력과 경험에서 나온 고백,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은 힘이 빠진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탕자의 모습일 수 밖에 없기에 그 고백이 마음을 울립니다.
많은 나이에 높은 지성을 쌓은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바로 볼 수 있는 겸손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힘이 빠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의 헛된 모습을 죽이기 싫어서 진리를 거부하는 모습이 많은 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을 보게 만듭니다.
“내가 지금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진실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멀리 떠나고 있는 까닭은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